일요일, 12월 16

신일골드코인의 부활…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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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 형태가 무엇이 됐든 인간의 탐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을 달궜던 보물선 사기사건은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바람이 전해줬다. 이들 일당이 다시 코인 사기를 벌이는 것 같다는.

특종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지난 9월, 보물선 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신일그룹이 그룹 명칭을 ‘SL블록체인그룹’으로 바꾼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수두룩하게 검색됐다. 대담하게도(?) 업체 측에서 보도자료를 뿌렸고, 언론은 이걸 그대로 받아썼다.

이달 초에는 이 회사가 인도네시아 광산그룹과 금광물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는 기사가 넘쳐났다. 어느 정도 규모의 광산그룹인지 하는 설명은 빠진 채 인도네시아가 세계 금광 생산 3위 국가라는 사실만 언급됐다. 이 회사가 발행하는 ‘트레저SL’ 코인은 세계에서 송금속도가 가장 빠르고 보안기능도 강력하다고 주장했다. 이달 말에는 글로벌 거래소에도 상장한다고 한다. 대박 환상 중추를 자극하는 메시지다.

◇받아쓰는 언론, 믿고 싶은 것만 보는 투자자
이 수상한(?) 그룹에 대한 정체는 이미 지난 10월 세상에 알려졌다. MBC는 ‘단독’이라는 단어를 박고 <‘보물선’ 현혹하더니 이번엔 ‘25조 금광’…영장 신청’>이라는 뉴스를 내보냈다. 신일그룹에서 보물선 코인이라고 사기 행각을 벌였던 이들이 아이템을 살짝 바꿔 또다시 일을 꾸민다는 내용이었다. ‘25조 금광’은 SL블록체인그룹이 금광물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는 부분을 말한다.

인터넷에는 트레저SL 코인에 대한 기사가 넘쳐났다. 필자가 몰랐을 뿐이다. 기사의 대부분은 전형적인 보도자료 받아쓰기다. 기업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 보도자료가 기사의 탈을 쓰니 그럴 듯한 ‘팩트’가 돼버렸다. 그런 유사 팩트는 포털을 타고 다시 업체로 들어가 투자자들에게 알려진다.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허황된 주장이 꽤 실현 가능성 큰 예측으로 뒤바뀐다.

SL블록체인그룹은 홈페이지와 관련 밴드ㆍ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코인(트레져SL)을 판매했다. SNS에 나와있는 안내에 따르면, 코인은 5차례의 프라이빗세일을 통해서만 진행된다. ICO(Initial Coin Offering, 암호화폐를 활용한 크라우드펀딩)는 실시하지 않는단다. 회차가 올라갈수록 코인 판매 가격은 높아진다. 잠재적 투자자들의 몸을 달게 만드는 구조다. 마지막 5차 판매는 11월 15일부터 23일까지. 상장은 11월 30일 금요일 오전 9시란다.

사진1) SL블록체인그룹 홈페이지 첫 화면

◇백서 없다는 비판에 영문판까지
사기 냄새가 너무 나지만, ‘만약’이라는 경우의 수도 있으니 프로젝트를 가능한 꼼꼼히 살펴봤다. 홈페이지(tslcoin.net)에 접속하니 신일골드코인(보물선 사기 의혹 코인)과 달리 제법 그럴 듯해 보였다.

먼저 사이트에는 ‘Block Explorer’라는 부분이 있다. 클릭해 보면 해당 블록체인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이더리움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이더스캔과 비슷하다. 그런데 약간 어색하다. 이더스캔이 최근 50만 개 블록의 기록을 보여주는데 반해, 이곳에선 오직 최근 100개의 블록 기록만 확인할 수 있다.

더 이상한 건 지갑주소를 클릭했을 때다. 코인을 받았다는 특정 지갑 주소를 클릭해 봤더니 왜 코인을 받을 때는 492개씩만 받았나 싶다. 그리고 코인이 주기적으로 들어오고 나가면서 지갑의 잔여 코인량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분위기다. 마치 거래량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자전 거래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다른 지갑 주소를 클릭해도 코인 수취량은 492개로 똑같다는 점이다. 한 번에 전송할 수 있는 코인의 양이 492개밖에 안 돼서 그런가 싶은데, 전송량을 보면 492의 배수(5배, 7배 등)와 정확히 일치한다.

앞서 신일골드코인은 ICO를 진행하는데 백서도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트레져SL 코인에는 영문판 백서까지 있다. 그런데 백서 내용을 보면 허접하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인데도 관련 기술에 대한 설명의 거의 없다. 프로젝트 개발팀의 리더가 ‘송명호’라는 점도 찜찜하다. ‘송명호’라는 이름은 싱가포르 신일그룹 회장의 이름과 같다. 그는 신일골드코인이 문제가 되자, 자신을 미국 사모펀드의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미국 국적자라고 주장하며 회장직을 지난 7월 이어받은 인물이다. 송 회장이 백서에 등장하는 송명호와 동일 인물이라면, 그는 금융 전문가인 동시에 세계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블록체인을 개발한 개발자라는 의미다.

사진2) 업체 측이 주장하는 트레져SL 코인의 우수성

◇보물선에서 금광으로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회원 가입을 시도했다. ‘간단한 정보 입력으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고 나와 있지만, 이름ㆍ주소 및 비밀번호를 넣어도 가입이 거부됐다. 추천인 아이디가 없으면 가입이 안 된다. ICO를 하는데 무슨 신비주의 전략인가 싶다.

인터넷에서 트레져SL 코인과 관련해 발견한 한 블로그에는 낯 뜨거운 찬양이 넘쳐났다.

‘12만 SL블록체인그룹 전체 회원님들께 알려드립니다. Treasure SL 코인의 가치는 우리가 상승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자, 금수저가 되는 날이 D-36일 남았습니다.…우리 코인의 가격은 상장후 수 백배, 수천 배 상승할지, 그이상 얼마나 상승할지 모릅니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수천만 원까지 상승할 거라 예견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코인 사기꾼들의 레파토리다. 이들은 초창기 비트코인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지금의 대박을 꿈꾸게 만든다. OO코인도 비트코인의 길을 갈 거라고 유혹한다.

‘우리 코인은 가지고 계시면 금화로 교환 지급되는 세계 최초의 실물 이익 교환 암호화폐이며, 금수저가 되는 열쇠입니다.’

백서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다. 백서에는 이 코인을 결제 목적으로 명시했다. 공동 개발 협약을 맺었다는 인도네시아 광산그룹은 도대체 검색이 안 된다. 필자의 구글링 실력이 부족한지 실존하는 기업인지 의심된다.

◇현금 투자받으면 사기…세상은 넓고 호구는 많다
‘사기 의혹’을 ‘사기’라고 확신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참여방법이다. 트레져SL 코인 투자는 이더리움ㆍ현금ㆍ부동산(아파트ㆍ빌라ㆍ토지 등)ㆍ동산(자동차 등) 등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현행법 상 정부로부터 인가나 허가를 받은 금융회사가 아니고서는 일반 투자자로부터 돈(혹은 그에 상응하는)을 받을 수 없다. 돈을 받으면 그게 바로 유사수신(受信)행위다. 법적 처벌 대상이다. 정부가 ICO를 금지하지만 암암리에 ICO가 이뤄지는 건 투자금을 모으는 용도로 쓰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서다. 명확히 불법이라고 규정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이 코인을 현금 등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유사수신으로 처벌 가능하다.

판매 방식도 문제다. 코인을 추천하면 추천자는 참여자가 받는 코인의 50%를 인센티브로 받는다. 불법이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다단계 판매원에게 지급하는 후원수당 총액은 매출액의 35% 이내로 제한된다.

한 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다. 세상은 넓고 호구는 많다.

사진3) 트레져SL 코인의 지갑 거래 기록. 왼쪽과 오른쪽은 다른 지갑이지만 코인 수취량이 492개로 모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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