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BL] 화폐의 역사를 통해 바라본 암호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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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하여 2000원짜리 기념 지폐 230만 장을 발행했다. 이 지폐는 은행 등을 통해 1장에 8000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2000원권 230만 장의 액면가 가치는 46억 원인데, 이를 4배의 판매가에 팔았으니 총액은 184억 원으로 138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 액면가 2000원짜리의 기념지폐를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200원 정도로 실제론 1840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얻는 이익, 다시 말해 화폐의 액면가에서 제조 비용을 뺀 이익을 시뇨리지라고 한다.
한국은행은 정확한 제조원가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100원, 500원짜리 동전은 3~50원, 1000원권, 5000원권, 1만 원권, 5만 원권 지폐는 100~200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세종대왕이 그려진 녹색 종이, 이 한 장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200원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1만원으로 알고 쓰고 있다. 즉 화폐의 가치는 내재가치가 아니라 ‘그것이 가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실 또는 사회적 합의로부터 발생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런 맹목적인 믿음을 갖기 시작했을까?”

잉여 생산물이 발생하니 인류는 이를 교환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았고 처음에는 상품 자체를 교환했던 물물교환이나 곡물, 조개껍데기를 기준으로 썼던 상품화폐를 썼다. 이후 금속화폐로 발전했다. 동양은 금 매장량이 많지 않아서 금 대신 구리 동전을 썼다. 금은 화폐의 장점뿐만 아니라 매장량이 적어 수급 변동이 크지 않아서 희소가치를 지녔고, 쉽게 녹슬거나 변하지도 않았다. 이는 당시에 화폐로서 더 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가춘 것이었다.

초기에는 금을 잘라서 사용하며 단위를 무게로 가치를 측정했던 칭량화폐를 사용했다. 매번 물건을 사고 팔 때마다 일일이 무게를 재야만 했고, 이는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금과 은의 크기와 모양을 조금씩 맞추다 막대 형태의 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정한 무게와 순도를 확인하고, 믿고 사용하라는 의미로 인장을 찍었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벼운 무게와 같은 모양을 가진 금과 은 덩어리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동전이다.

유럽에서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원활한 무역 거래를 위해서 서로 다른 금화의 가치를 평가할 전문가가 필요해졌다. 금세공인은 과거 서로 다른 금화의 가치를 평가하며 금을 보관하기 위한 안전한 금고가 있었다. 금세공인은 금고에 다른 사람의 금을 보관해주고 보관료를 받았다. 고객에게는 누군가 얼마의 금을 맡겨놨다고 적은 보관증을 발행해줬다.

금세공인은 지폐를 유통시켰을 뿐만 아니라 은행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금융업의 시초가 됐다. 보관증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지불할 수 있게 되면서 골드스미스 노트는 상인들 사이에서 지불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 보관증이 유럽 최초의 지폐가 됐다. 여기서 수익이 발생하자 금세공인은 보관에만 전념하다, 보관증 만큼의 실제 금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뒤, 웃돈이나 사용료를 받고 실제 맡기 금 이상의 보관증을 발행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가가 정한 지폐가 만들어지기 전 상황이라, 각 지폐는 발행한 은행에서만 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그러다 영국에서 단일 법정 지폐와 중앙은행이 처음 탄생했다. 하지만 법정 지폐와 중앙은행의 탄생 배경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으로 재정이 궁핍해지자 지폐를 발행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위한 돈마저 없어 상인들로부터 자금을 차입하고 공동출자 방식으로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설립하고 파운드화를 찍어냈다.

파운드화는 초기에 민간 지폐와 다를게 없었다. 하지만 정부를 등에 업은 파운드화의 영향력은 날로 커졌다. 위조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영란은행을 제외한 은행의 지폐 발행을 금지해 독점적 화폐 발행권이 성립됐다. 영국에서 국가가 지폐 발행으로 재정을 확충하는 성공 사례가 나오자 주변국도 하나둘 중앙은행과 법정 지폐를 만들었다. 영국과의 무역에서 만성 적자를 보던 미국도 자체 지폐를 발행했다. 다만, 이 경우는 교환해줄 수 있는 금, 은 등의 준비금 없이 신용만으로 만든 화폐였다.

18세기 은이 중국, 인도로 다량으로 빠져나가자 영국은 금과의 교환성에 기초해서 지폐에 가치를 부여했다. 이를 금본위제라고 한다. 금본위제가 없었다면 지폐는 금화와 달리 그림 그려진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지폐를 금으로 바꿔준다는 금본위제를 명문화하면서 지폐에 신뢰를 부여했다. 금을 제공한다는 믿음이 유지되는 이상 안정적으로 돈의 가치가 안정되는 시스템이었다. 금 없이는 화폐를 쉽게 찍거나 없앨 수 없어 통화량의 급격한 변동도 막을 수 있었다. 실세로 제 1차 세계대전 전까지 금본위제는 국제 금융 시스템을 잘 이끌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각국 정부에 급전이 필요했다. 보유한 금 이상의 돈을 찍어야만 했다. 결국 영국을 기점으로 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다시 금본위제를 선언했다. 달러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줬다. 이를 브레턴우즈 체제라고 불렀다.

미국은 본토에 전쟁 피해를 입지 않은데다 참전의 대가로 대량의 금을 챙겼다. 당시 미국은 세계 금의 약 80%를 쥐고 있었다. 세계는 금에 기반한 안정된 가치의 달러를 원했고, 이 때부터 미국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면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자 금본위제를 중단했다. 이 때부터 화폐 가치와 금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명목화폐, 신용화폐 시대의 시작이다. 금과 같은 실물의 가치와 연계되지 않으면서 정부의 신용을 근거로 유통되는 화폐로 어떤 나라 경제가 흔들릴 때 화폐가치도 덩달아 급락을 한다. 실물 근거가 필요 없으니 정부는 화폐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통화관리가 까다로워졌다.

출처 : Koinkrunch

오늘날 화폐는 더 이상 실체를 갖추지 않고 플라스틱 카드를 통해 계좌에서 계좌로만 이동한다. 금속을 대체했던 지폐는 데이터에 자리를 내줬다. 최근 현금 없는 사회가 대두되고 있지만 현금 없는 사회를 우려하는 경고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가 된다는 말은 곧 현금이 데이터로 대체된다는 말이고, 이는 당국의 금융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의미한다. 또한 강도나 소매치기 등의 범죄는 사라지겠지만 해킹과 정보유출 등 사이버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화폐의 역사 속에서 사용하는 화폐가 변할 때마다 대두됐던 요소들로 가치 척도, 교환의 매개, 희소성, 가치 저장, 가분성, 휴대성, 신뢰 등이 있었다.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며, 현금 없는 사회가 대두됨에 따라 중앙의 통제와 해킹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암호화폐는 앞선 문제들을 해결하며, Next Money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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